인권과 인식


편의제공은 두 번째 기준이다

김성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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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03 17:01






김성남(발달장애지원전문가포럼 대표/ 나사렛대학교 겸임교수)

누군가의 도움없이 장애인의 일상생활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상황에서 이용가능한 편의제공이 필요하다.

두 다리를 사용해 서거나 걷기 어려운 사람에게는 휠체어가 필요하다.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에게 경사로나 엘리베이터는 중요한 편의시설이다. 그런데 휠체어는 이동보조기기이면서 주로 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사용하므로 장애인을 위한 ‘편의제공’이라 할 수 있다. 반면에 경사로나 엘리베이터는 ‘편의제공’을 넘어서 누구나 접근가능한 시설이기도 하다. 

휠체어는 특정 사용자를 전제로 디자인된 도구이므로 그 제품을 설계하는 사람들은 ‘접근성’ 또는 ‘접근가능성’을 생각하기보다는 ‘사용성’ 또는 ‘편의성’에 초점을 두고 설계한다. 반면에 경사로나 엘리베이터는 건물을 설계하는 사람들이 ‘접근성’ 또는 ‘접근가능성’에 초점을 둘 때 설치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건물에 대한 접근성을 위해서는 이밖에도 수많은 요소들이 고려되어야 한다. 계단의 단차나 폭, 경사로의 기울기나 폭, 계단을 따라 설치된 레일의 높이, 문이나 복도의 폭 등 대부분이 이동을 통한 접근성의 보장을 위해 고려되어야 할 수많은 요소들이 있고 경사로와 엘리베이터도 그와 같은 선상에서 설계가 된다. 즉, 이런 부분들은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나 편의제공이기 전에 건물외부와 내부의 접근성의 문제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편의제공’ 또는 ‘편의시설’을 요구하는 것과 접근성을 보장하라는 주장은 그 의미가 달라진다.

유니버셜 디자인은 장애 vs 비장애의 구분을 전제하지 않는다. 이것은 하나의 보편적인 이념일 수 있고 원칙일 수 있으며, ‘누구나 또는 모두 접근가능한가’하는 보편적인 접근권의 문제에 관심을 둔다. 편의제공은 기존의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 및 서비스에 추가적으로 설치하거나 기존의 것을 수정 또는 개조할 필요를 발생시키지만, 유니버셜 디자인의 중요한 원리인 접근성은 애초에 처음부터 그 설비나 도구, 소프트웨어 또는 서비스를 제작하는 시점부터 고려하게 되는 디자인의 요소이기 때문에 제작이나 설치가 끝난 이후에 추가적인 수정의 필요를 발생시키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접근성은 누군가 특정집단을 사용자로 상정한 것이 아니며 그래서도 안된다. 

접근성이든 편의제공든 공히, 그것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그 시설이나 도구나 서비스는 누군가를 배제하고 소외시킨다. 그러나 편의시설이나 편의제공은 접근성과 달리 추가적인 작업이나 비용의 부담을 발생시킬 가능성이 큰 반면 접근성의 확보는 애초부터 모든 사용자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무언가가 완성된 이후의 추가적인 비용이나 작업의 요구가 발생되지 않는다(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편의시설로도 번역하고 적응으로도 번역이 되는 Accommodation은 평균적이지 않은 누군가를 소외시키는 Equality 즉, 결과의 평등 또는 평균화보다는 우월한 개념이지만 가장 최우선적인 가치를 가지는 의미는 아니다. 그보다 더 앞서 고려해야하고 더 큰 가치를 지닌 개념은 접근성으로 번역되는 Accessibility, 즉 접근가능성이다. 접근가능성은 좀 더 포괄적인 이념이자 원칙인 유니버셜 디자인을 구현하는 핵심적인 원리이기도 하다. 요컨대, 편의를 제공해주는 것이 먼저가 아니라 처음부터 누구나 접근가능하고 사용가능하도록 제품을 만들고 서비스를 설계하는 것이 더 우선적인 가치를 지닌 디자인의 원리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불가능하거나 불합리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에 차선책으로 편의제공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적장애인에게, 그들의 일상에서 편의제공과 접근성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생각해 보자.

남녀 화장실을 표시하는 픽토그램은 대부분의 발달장애인들에게도 접근가능하고 이해가능한 보편적인 디자인의 결과물이다. 그런데 간혹 고급 호텔이나 식당 등에 설치된 화장실에는 이 흔한 픽토그램이 아니라 화려하게 꾸며진 중절모를 쓴 신사의 모습과 영어로 ‘GENTLEMAN’ 이라는 글자를 디자인해 남자화장실을 표기한 경우가 있다.  



이런 식의 디자인은 지적장애로 인해 글을 읽기 어려우면서 이미지의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에게 화장실이라는 정보에 접근하기 어렵게 만든다. 한마디로 접근성이 낮은 디자인이다. 접근성을 확보하는 것은 그것을 디자인하는 사람이 머릿속에 그리는 사용자의 범위를 확장시켜야 가능한 것이다. 장애인이나 노인들과 같이 인지기능이 저하되어 있는 어떤 사용자들은 이런 방식으로 매우 자주 환경과 제품과 서비스 방식에 의해 소외당한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패스트푸드 식당(예, 맥도날드, 버거킹 등)에서는 언어를 사용하기 어려운 지적장애인이나 외국인들도 제품사진을 보고 자신이 원하는 메뉴를 선택할 수 있다. 글자뿐만이 아니라 사진으로도 정보가 함께 제공되고 있기 때문에 접근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식당들 대부분은 이미지가 아닌 텍스트로만 메뉴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 식당에서 글자를 읽기 어렵고 말로 원하는 것을 발화하기 어려운 사람들은 메뉴를 선택할 방법이 없다. 즉, 텍스트라는 정보의 양식(mode)이 그것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을 소외시키고 있는 것이다. 

우리 정부는 2008년에 제정된 장애인차별금지법에 의해 대부분의 공공기관 및 교육기관과 규모가 큰 기업의 웹사이트는 웹접근성 지침을 준수하여 제작하도록 하고 있다. 이것은 이미 텍스트가 어떤 사람들에게는 장애물이 될 수도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사이버공간이 아니라 실제 일상생활 환경에서 우리가 접하는 많은 정보들이 이러한 접근성을 준수하도록 하는 규정이나 제도는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뭘까? 내가 추측하건데, 장애인차별 금지법을 제정하고 웹접근성 지침을 만드는 일에 관계된 대부분의 사람들, 즉, 정책입안자, 지침개발자, 정책을 요구한 사람들이 모두 시각장애인만 텍스트에 접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정도의 생각에 머물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글을 읽을 수 없는 사람을 시각장애인으로 한정해서 생각하게 되는 이유는 편의제공이나 접근성이 필요한 장애인을 주로 신체적 기능에 장애를 가진 사람으로만 국한하는 오래된 고정관념 때문이다. 아직도 많은 일반대중과 신체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는 당사자와 장애인복지 종사자 그리고 제품과 콘텐츠를 만드는 디자이너와 개발자들은 발달장애인은 편의제공이나 접근성의 확보가 필요한 장애가 아니라 인적 보조나 돌봄의 대상으로만 인식하고 있다. 이 때문에 발달장애인을 위해서는 어떤 편의가 제공되어야 하는지, 그들도 접근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정보, 제품, 서비스가 어떻게 설계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고, 알지 못하는 만큼 관심도 부족하다.

처음 제작하거나 기획하는 단계부터 시각장애나 청각장애라는 ‘장애’를 먼저 생각해서는 보편적인 접근성을 확보하는 데는 한계가 생길 수밖에 없다. 무슨무슨 장애인이 아니라 글을 읽을 수 없는 사람, 말을 할 수 없는 사람, 단기기억이 어려운 사람이 사용자일 수도 있다는 식으로 발상을 전환해야 한다. 시각장애인은 글을 읽을 수 없는 사람이 아니라 인쇄된 글자(묵자)에 한해서 접근하기 어려운 사람이다. 이제는 시각장애인도 글이 텍스트 파일로 제공되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스마트기기나 컴퓨터로 얼마든지 그 글을 읽거나 점자로 번역해서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청각장애가 있어서 말을 습득하기 어려웠고 그래서 말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될 수는 있지만 문자메시지를 화면에 찍을 수 있다면 그것은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나 다름이 없이 의사표현이 가능해 진다. 
언어중추의 손상이나 인지적인 장애를 가지고 있는 발달장애인의 경우 말을 못하는 사람이면서 동시에 필담이나 문자 메시지의 사용에도 제약이 있는 사람일 수 있다. 이들에게는 글보다 그림이 그림보다 사진이 사진보다 실물이 더 접근성이 높은 정보의 형태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 보면, 우리가 관심을 두어야 하는 것은 어떤 장애인이 어떤 장애를 가지고 있느냐가 아니라 신체적 기능이나 언어적, 인지적 기능에 일시적 또는 영구적 저하나 장애가 발생한 상황 자체를 염두에 두고 그 ‘상황’에 있는 사람도 사용자의 범주에서 배제하지 않고 접근성을 설계하고 구현하는 일이다. 이러한 시나리오를 미리 기획해보지 않고, 단지 장애가 없는 사람들만이 접근이 가능하도록 만들거나, 특정한 장애를 가진 사람만을 고려한 ‘편의제공’만을 생각해서는 안된다. 시초부터 장애인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든 신체적, 정신적 기능의 차이를 고려해야 하고 그것은 장애인을 장애인으로 보기 보다는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사용자로 상정해야 접근성이 확보되고 보편적인 설계가 이루어질 것이다. 

사실 이것은 가정이나 학교나 직장이나 지역사회의 자원과 정보들 모두에 적용되는 원칙이며, 물리적 장치나 설비만이 아니라 소프트웨어와 콘텐츠, 그리고 서비스과정에 까지 모두 적용되는 원칙이다. 

정보에 접근하고 인식하고 이해하고 그것을 사용하는데 가장 큰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이 발달장애인이다. 그들의 일상에서 비장애인들의 일상적으로 누리는 정보접근의 권리가 확보되지 않는다면,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이동할 수 없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 상황에 내몰린 것이다. 그것은 발달장애인이 아닌 다수의 사람들이 발달장애인을 배제하고 소외시키는 일이며 지금은 정보로부터 소외되는 것이 곧 일상적 삶을 빼앗기는 일이 될 수밖에 없는 시대이다.


*이 글은 함께웃는재단 후원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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