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과 인식


당신은 진짜로 장애인을 위하고 있는가

김성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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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4.28 18:13




글 : 정유진 (부모 / 유아특수교육 석사 / 국제행동분석가)



많은 전문가집단이 그렇듯 행동분석전문가도 고도의 윤리의식을 장착할 것을 요구받습니다. 전문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요구되는 이론과 실습 과정의 양도 상당할 뿐만 아니라 자격증 취득시험의 난이도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많은 양의 이론과 윤리지침 중 특히 강조되는 항목이 바로 과학의 껍데기로 포장된 허위치료나 기법에 대한 경고입니다. 안정성과 효과성이 제대로 입증되지 않은 치료나 기법의 특성을 파악하고 절박한 마음에 이와 같은 치료에 몰두하는 가족에게 올바른 정보를 제공할 의무가 전문가에게 있다는 내용입니다. 


‘촉진된 의사소통(FC, Facilitated Communication)’이라는 기법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 기법은, 촉진자가 장애인의 팔을 잡아주면 장애인이 키보드나 글자판의 알파벳을 하나씩 가리키며 문장을 구성하여 의사소통을 하게 된다는 주장(두 명이 마주보고 연필을 잡으면 한 사람의 손에 귀신이 들어와 저절로 저주의 글이 씌여진다는 분신사바 의식과 유사합니다)으로, 말을 거의 하지 못하는 장애인의 의사소통 권리를 옹호해줄 방법으로 각광받기도 했습니다. 


이름 그대로 의사소통을 촉진하여 말하기 어려운 장애인에게 글로 소통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젖혀줄 것만 같은 이 기법은 그러나, 1990년대 이후 엄청난 스캔들에 휘말리며 절대로 권장해서는 안 될(뜯어말려야할) 기법의 리스트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FC가 각광받던 1980년대 한 장애인이 촉진자의 도움을 받고 쓴 글에 끔찍한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장애를 가진 딸이 아빠에게 성폭행 당했고 가족에게 모진 학대를 받았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비참한 사건의 희생양이 된 불쌍한 장애인에 세상이 주목했고 FC로 적힌 글의 진위여부를 따지게 되었습니다. 장애인의 곁에 항상 있던 촉진자가 아닌, 가정의 상황을 전혀 모르는 촉진자의 도움을 받았을 때에는 전혀 다른 내용의 글이 씌여지거나 간단한 사실관계에 대해서도 답하지 못하는 현상을 보고, 그 폭로가 완전 허구의 내용이며 그 조작의 장본인이 장애인의 팔을 잡아주는 촉진자였다는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그 촉진자는 왜 그런 끔찍한 내용을 장애인의 손을 빌어 쓰게 되었을까요? 그 가족과는 나쁜 감정적으로 얽힌 과거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글자판의 알파벳을 짚어가는 장애인의 손을 이리저리 유도한 그 촉진자의 마음속에는 무서운 편견이 도사리고 있었습니다. “내가 맡은 저 장애인은 말도 한마디 못한 채로 20여년을 살아왔어. 너무 불쌍해. 이 ‘촉진된 의사소통’ 기법을 빌어 그 답답한 마음이 드러났으면 좋겠어.”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장애인이 불쌍하고 억울하고 답답할 거라는 편견이, 자기도 모르게 장애인의 팔을 움직여 성폭행과 학대를 폭로하는 엄청한 글을 써내려가도록 한 것입니다. 실제로 심리학 분야에서는 ‘촉진된 의사소통’ 기법 내 촉진자가 보이는 ‘자기기만’ 현상에 대해 해석한 논문이 여러 편 존재합니다. 


자기기만, 즉 거짓이거나 검증되지 않은 것을 마치 사실이나 검증된 것으로 믿도록 하는 과정을 뜻합니다. 자신만의 거짓된 믿음이 진짜인양 믿어버리는 것이지요. 발달장애를 고민하고, 발달장애 영유아와 청소년, 성인과 함께 살아가거나 그들과 다양한 상황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서도 촉진자의 자기기만과 유사한 현상이 관찰됩니다. 다소 거짓임을 알면서도, 또는 선한 의지만 갖고 있다면 대부분은 정당화될 수 있다는 비틀린 믿음으로 일말의 의심을 묻어버리는 것이지요.


우리의 의지나 의도, 또는 우리 자신의 신분이나 직업이 발달장애인들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요구에 반하는 거짓과 해악은 존재합니다. 우리의 굳센 의지나 선한 의도, 내가 장애인 가족이라는 신분이나 교사·복지사·치료사라는 직업이라는 조건이 곧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요구에 부합할 것이라는 담보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저 발달장애인을 위한다는 뭉뚱그려진 의무감보다는 진실과 거짓을 가르는 과학적인 정보를 걸러낼 냉철한 판단력이 필요하고, 쉼없이 공부하며 단련해야 합니다. 


참, ‘촉진된 의사소통’은 외국의 몇몇 대학에서 여전히 교육/자격과정으로 개설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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